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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 10세 딸과 숨진 아버지…반복되는 간병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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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87회 작성일 24-02-07 10:49 SNS 공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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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 10세 딸과 숨진 아버지…반복되는 간병 살인


뇌병변장애 가정 자식 살해 이어져

돌봄과 경제적 부담으로 인한 고통

"뇌병변장애, 발달장애보다도 소외"

"지자체 아닌 정부 차원 노력 필요"


[서울=뉴시스] 여동준 기자 = 설 연휴를 일주일 앞두고 서울 서대문구의 한 빌라에서 장애가 있는 10세 딸과 40대 아버지가 숨진 채 발견된 가운데 최근 부모가 최근 장애인 시설 입소 여부를 두고 갈등을 겪었다는 이웃들의 증언이 나왔다. 2024.02.02. yeodj@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김래현 기자 = 설날을 일주일 앞두고 뇌병변 장애가 있는 10세 딸과 숨진 채 발견된 40대 아버지의 비극이 알려지며 반복되는 간병 살인의 고리를 끊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7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일 오전 7시58분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빌라 지하 창고에 친 텐트 안에서 40대 남성 A씨와 10세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는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있었고, 부녀에게서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A씨는 이 빌라에서 아내와 함께 1남2녀 세쌍둥이 자녀를 키웠다. 이중 사망한 딸과 아들이 뇌병변 장애를 앓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웃 주민들은 "부부간에 (자녀를) 장애인 시설에 맡깉지 말지를 두고 갈등이 있었다"고 했다.

오랜 보살핌 끝에 환자를 살해하는 간병 살인의 비극은 꾸준히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대구에서 1급 뇌병변장애를 앓는 아들을 40년간 보살핀 60대 아버지가 아들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는 스스로 걷지 못하는 아들을 돌보기 위해 직장도 그만두고 간병을 도맡아 온 것으로 파악됐다.

재작년에도 태어날 때부터 뇌병변 장애가 있었던 딸을 38년 동안 간병한 60대 어머니가 딸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

모친은 다른 지역에서 일하는 남편과 떨어져 생활하며 딸의 돌봄에 전력을 다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뇌병변 장애는 뇌성마비와 뇌졸중 등으로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는 중추신경장애다. 해당 장애가 있으면 자력으로 돈을 벌 수 없는 데다 주위에서 계속 보살펴야 하기 때문에 가족들이 돌봄과 경제적 부담이라는 이중고를 겪는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22년 발표한 '발달장애인 지워 정책과 개선 방향' 연구를 보면, 부모가 발달장애 자녀를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사건은 2년 동안 20여 건이 일어났다. 한 달에 한 가정꼴로 간병 살인이 벌어진 셈이다.

해당 연구 결과 2015년부터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발달장애인법)'이 시행됐지만, 가족 돌봄 부담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는 가족 돌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가족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발달장애인 특성을 반영한 생애주기별 서비스도 제공하는데 한국은 이 부분이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도 2018년 발달장애인에 관한 주간 활동 서비스와 방과 후 활동 서비스를 도입했지만, 제공 시간이 가족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준은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두 서비스의 목적이 다른데 동시에 이용하면 중복 혜택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지원 시간을 차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달장애에 포함되지 않는 뇌병변 장애 가정은 이마저도 지원을 받기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발달장애에는 자폐성장애와 지적장애만 포함되고, 뇌병변 장애는 별도의 유형으로 분류된다"며 "뇌병변 장애인은 발달장애인에 비해서도 제도적으로 훨씬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뇌병변 장애는 신체에 강직이 있는 게 특징이고, 의사소통에 제약이 있는 경우도 다수다"며 "누워서 생활해야 하는 분들도 있다 보니까 가족들의 돌봄 부담이 크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부터 뇌병변장애인 지원 조례를 시행해 가족의 휴식과 주간 활동 서비스 지원 등에 나섰지만, 전문가들은 지방자치단체(지자체) 혼자 뇌병변장애 가정의 간병 살인을 막기는 역부족이라고 보고 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족이 원하면 집에 요양보호사를 보내 간병을 도와주고, 더는 집에서 안 되겠다고 가족이 판단하면 시설로 보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돌봄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전날(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 앞에서 열린 정기 '화요집회'에서 서대문구 부녀를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들은 추도사를 통해 "아빠는 국가가 아이와 가정을 지켜주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며 "국가가 외면한 그 무거운 책임은 홀로 남겨진 아내가 오롯이 짊어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십년을 버텨온 젊은 아빠의 참담한 선택이 우리 가슴 속 둑을 무너져 내리게 한다"며 "십년을 그늘 없는 가정을 지키며 살아왔다는 아빠의 마음속에, 장애의 무게란 사랑했던 막내딸의 삶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아득한 절벽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라며 정부 차원의 대책을 호소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rae@newsis.com